-7.2 C
Seoul
화요일, 12월 24, 2024

영화 A.I. 속에서 찾아보는 로봇과 인간의 윤리

Arts and Entertainment영화 A.I. 속에서 찾아보는 로봇과 인간의 윤리
common 3

“로봇이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는 사람이 그 로봇을 사랑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로봇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준다면, 사랑받는 사람은 그 메카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하죠?”

로봇에게 사랑 받는 인간은 어떠한 책임을 져야하느냐에 대한 논점을 던지며 영화는 시작된다. 로봇 회사에 다니는 헨리는 아내에게 냉동인간이 된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선물을 하나 가져온다.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최초의 자식 대행 로봇 메카, 데이빗이다. 데이빗의 외형과 말투, 행동은 완벽히 인간과 동일했다. 자식대행로봇 데이빗은 등록을 하는 순간 등록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제공한다. 헨리와 모니카는 처음엔 데이빗에게 불쾌한 골짜기 현상과 이질감 등을 느끼며 불편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모니카는 데이빗이 인간 자식처럼 느껴졌고, 결국 데이빗을 등록한다. 등록을 하자마자 데이빗에게는 신념이 생긴다. 엄마가 된 모니카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집착한다. 영화 포스터엔 “His love is real. But he is not.”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데이빗의 사랑은 진짜인데, 그는 가짜인 ‘로봇’이라 그의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냉동인간이었던 ‘진짜 인간 자식’ 마틴이 집으로 돌아오고, 데이빗과 잦은 마찰이 생긴다. 마틴은 로봇이 자식 행세 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하며 부모님이 데이빗을 싫어하게끔 행동하도록 만든다. 결국 로봇자식으로서 지켜야할 선을 넘은 데이빗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받길 갈구하던 엄마 모니카에 의해 자신이 만들어진 로봇 회사 앞의 숲에 버려지게 된다. 버려진 데이빗은 엄마 모니카가 읽어주었던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파란요정이 피노키오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을 떠올렸고, 자신도 파란요정에 의해 인간이 된다면 다시 엄마 모니카를 만나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가진다.

common 4

본격적으로 데이빗의 파란 요정 찾기 모험이 시작된다. 모험의 과정에서 데이빗은 ‘조’라는 로봇을 만나게 된다. 조는 데이빗에게 객관적인 사실을 제공하는 조력자이면서 촉진제 역할을 한다. 처음엔 데이빗에게 “엄마는 네 임무를 사랑하는 거야” 라며 데이빗의 욕망을 무너뜨리는 말을 일삼는다. 데이빗은 로봇으로 남길 원하는 로봇이고, 데이빗은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로봇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로봇이 서로 다른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지금 우리는 그저 인간에 의해 조종되고 실행되는 로봇만 떠올리지만, 후에 로봇이 개성을 가지기 시작하면 인간 세상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조는 파란 요정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하는 데이빗을 유식박사에게 데려간다. 유식박사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는 단서 제공 매체이다. 철저한 코딩으로 이루어져있어 질문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으면 엉뚱한 답변을 하기도 한다. 유식박사의 모습은 챗GPT, 바드 등 오늘날 대화형 인공지능과 유사해보였다. 2001년에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20년 뒤에 상상에 불과할 줄만 알았던 유식박사의 존재가 현실이된 것이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 더 크게 느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현 세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 도입부에 독극물을 한강에 버리는 것과 매우 유사하여 SNS를 들썩이게 했던 것처럼, 영화는 판타지를 이용해 근미래를 예측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유식박사는 허비교수가 파란 요정이라고 말했고, 데이빗은 이 정보에 따라 허비교수의 연구소로 찾아간다. 허비교수 연구소에 간 데이빗은 자신을 ‘진짜 데이빗’이라 주장하는 로봇을 만나고, 그를 때려죽인다. 나는 이 장면에서 잔인한 폭력성을 띠는 데이빗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데이빗은 자아정체성 확립이 강하게, 혹은 과하게 되어있었다. 이 장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경계해야함을 가장 크게 느꼈다. 로봇이 인간의 자아정체성을 이해하게 되고 감정을 갖게되는 순간, 우리는 로봇에게 위협받을 수 있다.

모험의 결과만 보고 말하자면, 실패다. 조는 인간들에게 잡혀갔고, 데이빗은 생뚱맞은 파란 요정의 동상을 발견했지만, 헬기에 갇혀서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내내 빌다가 얼어버렸다.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나고, 미래로봇이 등장한다. 2000년 전에 존재하던 로봇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모두 똑같은 외형을 하고 있다. 인간의 형체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미래로봇은 데우스엑스마키나와 같은 존재로, 동결되어있던 데이빗을 깨우고 데이빗의 소원을 들어주어 데이빗이 2000년동안 꿈꿔 왔던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단 하루였지만, 그토록 바라왔던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데이빗은 밝은 미소를 짓는다.

데이빗의 목표가 실현되는 장면이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찝찝하고 공포스러웠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평도 많았는데, 엄마라는 ‘인간’이 미래로봇과 데이빗이라는 ‘로봇’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는 로봇 개체수가 인간 개체수보다 많아지면서 인간의 취미 중 하나가 ‘로봇을 죽이는 것’으로 그려진다. 다떨어진 고철 로봇을 학대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들은 환호했고, 더 많이, 더 잔인한 방법으로 로봇을 죽이려하였다. 하지만 어느순간 로봇이 인간의 우위에 서서 인간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된 것이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서 로봇의 욕구를 충족시키게 해주고, 갑자기 왜 이생에 돌아왔는지에 대한 연유를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이전에 인간은 늘 로봇에게 ‘명령없이 스스로 하는 추론이 어디까지 갈지’를 실험한다고 했다. 그러나 결말은 인간이 개발한 인간을 닮은 로봇에 의해 인간이 구속당하게 된 것이다.

common 2

아쉬웠던 점을 얘기해보자면, 로봇 자식이 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해 떠나는 모험도 좋지만 나는 ‘감정을 느끼는 자식 대행 로봇’이라는 소재 선정이 너무 흥미로웠기에 그 부분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영화의 중후반부로 갈수록 스필버그의 색이 짙어져서 그것대로 특색있긴 했지만, 처음에 던져진 ‘로봇에게 사랑 받는 인간은 어떠한 책임을 져야하나’에 대한 논점을 영화 내내 끌고가면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까지 함의하는 스토리가 전개 되었으면 더 재밌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데우스엑스마키나의 존재도 조금 아쉬웠다. 데이빗은 헬기 안에서 냉동로봇이 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끝을 맞이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로봇이라는 데우스엑스마키나가 데이빗을 구제해주고, 영화 내내 주요 소재로 끌고왔던 데이빗의 욕망을 순식간에 해결해주어서 조금 허무했다. 여러 플롯 이론에서 ‘복권에 당첨될 기회는 남겨두라’라는 조건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확실히 이해가 갔다. 

이 영화는 공상과학 영화이지만 휴머니즘을 곳곳에 내포하고 있었다. 

“데이빗, 나는 가끔 인간이 영혼이라고 부르는 인간적인 것에 대해 질투를 했단다. 인간은 삶의 의미에 대해 수백만가지의 설명을 시도했지. 예술, 시, 수학공식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분명히 인간 자체가 존재의 핵심인데, 인간은 이제 멸종해서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완전히 픽션 영화는 아니라는 느낌도 받았다. 특히 허비 교수의 연구소에서 대량생산되고 있는 자식 대행 로봇은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출산율이 바닥을 찍고, 태어나도 성인이 되기 전에 자살을 하는 경우가 허다한 이 나라에서 자식 대행 로봇만큼 자식의 메리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을 테다. 육아 비용도 절감되고, 원하는대로 조종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폐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꾸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것, 더 쉽게 우리가 권력을 질 수 있는 것에 열광한다. 우리는 더이상 로봇을 가볍게만 생각해선 안된다. 인간의 로봇에 대한 책임과 윤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하며, 우리가 로봇을 어떤 의도로 생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고찰해야한다. 

로봇이 자아를 가지는 순간 그건 딱 잘라 로봇이라 할 수 없을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로봇이 교모하게 인간에 걸쳐지는 순간, 인간과 로봇은 이론적으로 성립 되지 않는 교감으로 인해 서로에게 적이될 수 있다. 이에 허비 교수의 연구소에 있던 그 수많은 자식대행 로봇들은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했다. 그것들 모두가 데이빗처럼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인간이 되길 집착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까? 인간의 자식이라는 개념이 바뀌진 않을까? 이 내용을 다룬 후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가 생기기도 하는, 방대한 시사점을 제공해준 영화였다.

Check out our other content

Check out other categories:

Most Popular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