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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2월 24, 2024

외로움과 싸웠던 전인권, 장발을 고집한 이유전인권은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장발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Music외로움과 싸웠던 전인권, 장발을 고집한 이유전인권은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장발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인권은 노래하는 것이 잘 안 풀릴 때는 만화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패드로 자신을 그려보고, 그림을 그리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조수로 강 박사를 써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인권은 매일 집게 손가락으로 박자를 세어가며 연습하는 연습벌레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천재는 1%의 천재성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소리 연습으로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인권의 고독이나 외로움은 사실 1%의 미완성에서 느껴지는 완벽으로부터의 소외감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늘 완전함을 꿈꾸며 그렇지 못한 0.1%의 미완성에 열등감을 느껴 불안에 떨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불안이 그를 국내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로 만들었나 보다고 말했다.

전인권의 목소리에 서려있는 슬픔이나 고통이 그의 노래를 환호받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환호 속에 숨어있는 그의 과거, 외로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처절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사람이 무대 위에서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몰입을 터득하기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아마도 수 천명의 가수 중에서 3%도 안될 만큼 완전몰입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 대열에 우뚝 선, 몇 안 되는 진정한 보컬리스트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의 포효를 들을 때면 그가 보여주는 초능력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20대 초반, 나는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고 종로 2가의 '3월4월'이란 이름의 통기타 살롱에서 고정출연 가수로 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때 이미 고정 출연 가수로 노래하고 있던 그를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1주일 정도 내가 그의 노래를 듣고, 또 그가 내 노래를 듣고 판이한 노래 스타일과 소리에 서로 호감을 가지고 친해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전인권은 긴 장발을 하고 있었다. 그의 긴 생머리는 짧고 단정한 내 생머리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의 긴 생머리가 사실은 가발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발일지라도 장발 수호를 위해서라면 거리의 경찰관에 대담하게 맞서나가며 이 골목 저 골목 필사의 도주를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유란 참으로 소중한 주제다. 그의 가슴 속에는 응어리진 자유가 웅크리고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인권에게는 장발을 통하여, 어떤 이에게는 반항을 통하여, 또 다른 이에게는 방랑을 통하여 각기 나타내는 부위가 다를 뿐, 음악인에게 있어 자유란 의식의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날개인 것이다고 말했다.

전인권의 노래가 좋다는 소문은 이미 입에서 입으로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가 방송국에 가서 리허설을 하던 중, AD가 "전인권씨 머리 좀 자르고 나오면 어떨까요?" 하니까 옆에 있던 PD가 "아니, 그러지 말고 뒤쪽으로 묶어볼까? 단정하게만 보이면 되니까" 라고 눈치껏 수정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뇨, 안 되겠는데요"라고 단호히 거절하며 홀가분하게 돌아서 방송국을 나온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부터 음악 활동 영역에 방송 활동을 끼워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인권과 대중들과의 유일한 만남의 무대는 콘서트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갖고 있던 콘서트에 대한 집념과 애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어떤 장소에서건, 사람들만 모여준다면 그는 거침없이 노래를 불러댔다고 말했다.

그의 원초적인 괴성으로부터 뻗어오르던 울림은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청춘, 의식의 견고함과 더불어 가난의 로맨틱과 함께 미래의 희망, 용기 등으로 전이되기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와 난 두 살의 나이 차이에도 서로를 강 박사, 전 박사로 호칭하며 친구도 아니고 형 동생 관계도 아닌 일종의 존중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와 난 노래 연습하다 지칠 때 종종 크레파스와 색 연필로 누가 더 그림 잘 그리나 내기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의 동화같은 꿈은 항시 넘실대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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