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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2월 24, 2024

Demolition ; 파괴, 철거

Arts and EntertainmentDemolition ; 파괴, 철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데이비스의 아내 줄리아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데이비스는 놀랍도록 아무렇지 않다. 아내의 죽음보다 병원 자판기 고장으로 나오지 않는 엠엔엠즈에 반응하며 분노할 뿐이다. 데이비스는 자판기 회사에 편지를 보낸다. 처음엔 평범했다. 초콜릿이 나오지 않았다며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곧 데이비스의 펜 끝은 화두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사실부터 아내의 죽음에도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속마음을 편지지 위에 툭툭 털어놓는다. 자신이 이상행동을 했단 것까지 모조리 고백한다. 그리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몇 차례나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에 자신의 이야기를 가득 담은 편지를 부친다.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은 적 없는 데이비스가 유일하게 솔직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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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의 편지를 가볍게 여기지 않은 고객센터 직원 캐런은 데이비스와 교류하기 시작한다. 데이비스도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담담하게 반응해주는 캐런에게 호감을 느껴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데이비스는 캐런네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캐런의 아들 크리스와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데이비스는 그들로부터 큰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는지, 줄리아의 장학재단 설립 행사에도 캐런을 데려간다. 아내 줄리아를 잃고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하고, 일상 생활을 이어나가고, 심지어는 죽은 아내의 뜻을 잇는 행사에 다른 여자를 데려온 데이비스를 보며 장인어른은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를 고치고 싶다면 모든 것을 분해해서 무엇이 중요한 건지 찾아내야해.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것도 자동차를 고치는 것과 비슷하지. 전부 분해해서 꼼꼼히 분석해야 모든 걸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지.”

장인어른은 데이비스의 마음이 고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데이비스는 어느 순간부터 장인어른의 그 말을 상기하며 온갖 것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아내가 고쳐달라했던 냉장고를 완전히 분해하고, 그다음은 회사 컴퓨터를, 화장실 벽을, 마지막엔 크리스와 함께 자신의 집을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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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가 중후반부로 향하고 있는데도 난 영화의 흐름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 ‘데이비스는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왜 온갖 물건들을 다 부수지? 저걸로 얻는 게 뭐지?…’ 뭔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긴 한데 도대체 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런 장면을, 저런 대사를 넣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 눈엔 그냥 데이비스가 정신 질환자 그 이상도 이하로도 안 보였다. 혼란이 무색하게 다행히도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 나의 모든 의문은 해결되었다. 데이비스도 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크리스와 유대 관계를 쌓아나가며,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간 교통사고의 가해자와 만나며, 차에 숨겨져있던 아내의 쪽지를 발견하며 데이비스는 두꺼운 콘크리트로 가려졌던 자신의 진실된 마음에 응하기 시작했다. 줄리아의 묘지에 들렸다 차로 돌아간 데이비스는 아이처럼 울었다. 그러다 웃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울었다. 데이비스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울기와 웃기를 반복했다. 심리학적으로 회피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첫 번째 과정이며, 이상행동과 분노도 심리학적으로 슬픔을 받아들이는 한 과정으로 명시 되어있다. 데이비스가 아내의 슬픔에 무던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평소같은 일상을 살아가려 ‘애썼던’ 것이 모두 슬픔의 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데이비스는 죽도록 슬퍼서 그랬던 거였구나.

문득 내가 떠올랐다. 나는 슬픔을 받아들이고 표출하기 보다 삼켜내기에 익숙한 것 같다. 나는 나를 자주 속인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흔히들 말하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쓰는 타입이 바로 나다. 데이비스처럼 슬퍼도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기뻐도 기쁘지 않은 척, 실망해도 실망하지 않은 척을 할 때가 많다. 내 인생의 순간들은 수많은 ‘척’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 보고 조금 두려웠다. 나도 나중에 데이비스처럼 한순간에, 한꺼번에 외면했던 감정이 몰아쳐올까봐. 나에게 솔직해지는 법을 절실히 배우고 싶어졌다. 내가 내 자신을 속이다보니 타인에게도 한없이 볼품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마 데이비스는 이런 내 마음을 깊이 공감할 거다. 그도 그래서 애먼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에 편지를 부치기만 하지 않았는가. 나도 나를 믿지 못할 때, 외려 아주 낯선 사람이 의지가 될 때가 있다. 나도 이제 데이비스를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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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는 아내가 죽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줄곧 ‘난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뒤, 자신이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다는 걸 깨닫고 장인어른을 찾아간다. “제가 그 사랑에 무심 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줄리아를 위해 진심이 담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그는 줄리아와 회전목마를 탔던 것을 회상하며 아이들을 위해 회전목마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청소년, 아동 복지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크게 보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과 기본소득를 표방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장인어른이 추진한 장학 제도는 성적과 인성을 기준으로 세 명의 장학생을 선발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성적과 인성을 가를 수 있는 테스트들은 모두 형식적이어서 충분히 꾸며내기가 가능했다. 선정된 장학생 중 한명은 재단 설립 행사에서 캐런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여 캐런을 실소하게 만들었다. 반면 데이비스가 실행하고자 한 프로젝트는 비교적 간단했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들긴 했지만, 신청서를 받을 필요도 없었고, 관계자 싸인을 받을 필요도 없었고, 거짓말 탐지기 필요하지도 않았다. 회전목마를 하나 마련해서 운영하는 것 뿐이었는데, 아이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었다. 청소년과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자선사업에 한해서, 나는 데이비스의 방식이 훨씬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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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는 ‘나는 뿌리 뽑힌 나무, 아니지. 난 나무를 뿌리 뽑은 태풍.’ 라고 말하며 아내가 죽은 후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이 은유처럼 보인다고 했다. 은유는 이 영화의 정체성이다. 이 영화 자체가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은유로 시작해서 은유로 끝난다. 자판기와 냉장고가 고장난 것도, 데이비스가 온갖 물건을 부수는 것도, 모든 게 다 은유였다. 여태까지 봐온 영화나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사랑하는 인물이 죽으면 오열을 하고, 복수를 하는 등 극적인 감정이 주로 묘사되었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자극적인 것 같지만 아주 은밀하게 주인공 데이비스의 감정을 묘사하고, 은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이 영화의 감정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슬픔은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발생한다. 상실감에는 감정적 시간 여행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슬픔을 경험할 때 한때 가졌던 것을 뒤돌아 보거나 앞으로 예상하고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슬픔의 형태를 단일하게만 생각했다.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면 슬프다는 매커니즘이 내가 가지고 있는 슬픔에 대한 편견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슬픔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었다. 슬픔은 회피하는 것, 슬픔은 냉철해지는 것, 슬픔은 폭력적인 것, 슬픔은 늦게 찾아오는 것. 이 모든 다양한 슬픔의 양상을 데이비스라는 한 인물을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내었다. 나는 이 영화를 편견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봐서 감사했다. 슬픔의 양상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큰 울림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덕분에 어른이 되어가는 한 과정을 경험한 것 같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냉장고 속 쪽지에는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주지’라고 적혀있다. 바쁜 척 그만하고 고쳐져야 했던 건 냉장고가 아닌 데이비스였다. 사회가 다원화 될수록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사람들이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표출해야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조금 성가시면 칼부림을 하고, 친구를 폭력하고,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는 문제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실패에 속이 상하면 시원하게 소리지르면서 털어버리고,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으면 엉엉 울자.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나도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렵다고 회피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내 감정을 내가 컨트롤 하는 것도 자신에게, 타인에게, 그리고 사회에 아주 큰 책임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 영화는 이런 감정 조절의 중요성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더불어 돈도 명예도 권력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기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고, 독특한 방식으로 감정에 솔직해져도 된다는 용기를 불어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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